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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디슈 (Escape from Mogadisu, 2021 한국)

 

장르 드라마, 액션

시간 2시간 1분

 

○ 감독 / 출연

 

○ 모가디슈 줄거리

86년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 이후로 위상이 높아진 대한민국이 국제 사회에 인정받기 위해 UN 회원국 가입을 시도합니다. UN 회원국에게 추천받기 위해 기존 UN 회원국인 소말리아에 한국 외교관들을 파견하게 됩니다. 소말리아에서 한국을 UN가입 추천을 받기 위해서 물밑작업을 시도하는 도중 모가디슈에서 일촉즉발의 내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22년간 바레 대통령 정권의 독재정치를 향한 반군들의 쿠데타가 1990년 12월 27일 날 터지게 된 것이죠. 이 사건으로 밤낮 할 것 없이 총탄이 쏟아졌으며 소말리아에 있는 모든 외교관들이 고립되면서 한국 대사관과 북한 대사관에 있는 외교관들도 고립이 되게 되면서 전기와 식량 그리고 연락마저 모두 끊긴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북한의 림용수 대사(허준호)가 북한 대사관 직원들을 모두 데리고 한국 대사관에 구조를 요청하면서 서로 오묘한 긴장감이 맴돌게 되고.. 이들은 국가와 이념을 뛰어넘어 오직 생존,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대책들을 마련하기 시작하게 되는데...

 

○ 영화 vs 실화 전격비교

 

1. 실제 소말리아 내전 당시에 어땠을까?

 

1993년 폐허가 된 모가디슈 모습 (사진 연합뉴스)

총탄이 비 오듯 쏟아지고 정부기관과 통신시설이 대부분 파괴됩니다. 주택가와 외국공관에는 총을 든 강도들이 몰려와 부녀자 겁탈, 금품 강탈 등을 일삼는 무정부 상태가 되었습니다. 소말리아 내전이 심해진 것은 1990년 12월 30일 오후 2시, 1월 1일 오전에 한국 대사에서 서울 본부에 연락을 넣었으나 전화 자체가 불통이 되었고 대사관 차량 또한 대낮에 무장괴한들에게 탈취당했습니다. 돈은 있으나 식량을 구할 수 없었고 시내 곳곳의 외교공관과 사택들이 약탈대상이 되자 미국·소련·중국 등 주요국 공관들이 철수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대사관도 철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 실제 이름과 구조된 총 인원은?

 

영화: 한국 소말리아 한신성 대사 (김윤석)

실제: 강신성 대사(54)

 

실제 구조된 한국 사람

강신성 대사, 이창우 참사관(조인성 연기), 박용원 고용원 부부, 교민 이규우씨(45) 부부와 아들 총 7명

 

 

영화: 북한 소말리아 림용수 대사 (허준호)

실제: 김룡수 대사(55)

 

실제 구조된 북한 사람

김룡수 대사 부부, 외손자(5), 참사관 부부, 일등서기관부부와 아들(4), 한상렬 통신기사 겸 운전사 부인과 아들(7), 다른 1명의 통신기사 겸 운전사 부부와 딸(3) 총 13명

 

 

3. 처음 공항에서 비상탈출이 무산된 것은 진짜일까?

 

1월 7일부터 이창우 참사관(조인성 역)을 모가디슈 국제공항에 대기시켜서 항공편 비상탈출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했습니다. 공항 관계자로부터 케냐 나이로비에 있는 한국대사관이 주선한 2대의 이탈리아 군용기가 곧 도착하니 탑승자 명단을 알려달라고 했지만 관계탑과의 교신 착오로 엉뚱한 군사기지에 착륙하고 맙니다. 이 구조기는 이탈리아 시민만 태우고 5분 만에 떠나게 됩니다. 

 

 

4. 실제로 북한 대사관과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영화에서는 북한 대사관이 습격을 받아 중국 대사관을 지나 한국 대사관까지 오게 되어 부탁을 하는 장면으로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달랐습니다. 앞서 탈출을 위해 공항에 간 한국 대사는 대합실에서 북한 김룡수 대사와 북한 공관원과 가족 14명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국 강대사는 우리의 처지도 어렵지만 수도 남한 측 보다 많은 가족들과 함께 공항에서 기거 생활하려는 북한 측을 어떤 모양이든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소 교류가 전혀 없었고 멀리서 한번 본 적은 있었으나 한 번도 말을 해 본 적은 없었지만 한국 강대사가 북측 대사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게 됩니다.

 

한국: "처음 뵙겠습니다. 한국 대사입니다. 반갑습니다."

 

북한: "허, 이 난리통에 여유만만하십니다. 넥타이까지 매고 오시고..."

 

한국: "떼죽음을 당할 위기 속에서 남북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한민족끼리 합심해서 탈출 작전을 펴 봅시다"

 

북한: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습네까" 

 

 

5. 양측 대사관은 진짜로 습격을 받았을까?

 

1월 4일 낮 12시 한국 관저에 장총을 든 무장괴한 4명이 대문을 깨고 진입을 시도했다가 경찰 한 명이 총을 발사해 격퇴했습니다. 옆집을 털던 괴한 세명이 뒷담을 넘어 기어들어오려고도 시도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가만있으면 안 됨을 자각하고 한국 대사는 아탄 공항 수비대장을 찾아가 관저 피습사건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처음에는 난색을 하던 수비대장을 강 대사의 300달러를 받고 경찰 8명을 지원받게 됩니다.  

 

북한 관저에도 내전이 일어난 이후 8번이나 무장 강도의 침입을 당했습니다. 공항에 가기 바로 전날에는 떼강도 20명이 북한 관저에 들이닥쳐 부인과 아이들의 목에 총을 들이밀고 살해 위협을 하면서 차량과 살림살이를 모두 가져갔습니다. 이때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북측 대사관 사람 전부를 데리고 공항으로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6. 어떻게 탈출하게 되었나?

 

처음 군용기가 날아왔지만 관제탑 교신 착오로 놓치고 남북한 대사는 다시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합니다.

 

한국: "미안하게 됐습니다. 관저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김 대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북한: "별 수 있습니까. 공항에 남아서 기다려지요. 여기서 죽으나 거기서 죽으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한국: "그러면 우리 집에 갑시다. 경찰들이 지키고 있으니 비교적 안전합니다"

 

다시 북한 관저로 돌아갈 엄두가 안나는 북한 대사관 일행은 묵을 처소를 여러 경로로 알아봤으나 결국 허탕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비교적 안전한 한국 공관으로 북한 사람들과 함께 되돌아와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됩니다.

 

다음날 아침, 북한의 김 대사는 자신들의 국교가 있는 이지트 대사관을 찾아가 카이로 주재 북한 대사관에 안부전문타전을 의뢰했고 카이로 주재 한국 영사관에도 남한의 공관원들이 모두 잘 있다는 전문을 보내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그날 아침 한국 강대사도 현지 경찰관 2명과 함께 6km 떨어진 이탈리아 대사관을 찾아가 구조기를 다시 요청했습니다. 이탈리아 대사는 12일 오후에 군용기가 올 예정이냐 남한 측 공관원 7~8명 밖에 태울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이탈리아 대사: "북한과는 수교하지 않아 곤란하다. 한국 직원들만 태우라!"

 

한국 대사: "대사는 우리들의 모세요. 우리끼리는 절대 못 갑니다. 도와주시오. 모두 데려가 주시오."

 

그러자 강대사는 서로 체재와 이념은 다르지만 한민족인데 어찌 그들을 두고 우리만 빠져나갈 수 있겠냐며 4시간동안 이탈리아 대사를 설득하고 확답을 받아냈습니다. 

 

이 사실을 즉시 북한 김대사에게 통보했으나 처음에는 이탈리아가 미수교국임을 의식한 탓인지 난색을 표시했습니다. 하지만 무장한 떼강도들로부터 부녀자를 보호할 길이 없다는 생각에 결국 우리 측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남북 양측은 10일 오후 3시 55분쯤 태극기를 꽂은 6개의 승용차를 나누어 타고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12일 오후 4시에서 6시 이탈리아 시민과 남북한 대사 일행과 함께 공항으로 이동시킨다는 계획을 세우고 그 시간대 정부군과 반군의 전투를 중지해달라고 요청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후 5시 이탈리아 군용기 2대에 소말리아 난민 3백여 명과 함께 탑승하여 오후 7시 30분에 케냐의 몸바사에 무사히 도착하게 되면서 장장 12일에 걸친 대탈출극이 마무리됩니다. 

 

 

7. 실제로 그 당시에 죽은 사람은 없나요? 

 

승용차를 나누어 타고 이탈리아 대사관을 향하던 도중 이들의 행렬을 반군으로 오인한 정부군이 대사관 후문 접근할 때 집중 사격을 하게 됩니다. 앞서 가던 몇 대는 차를 급히 꺾어 총격을 피했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뒤따라오며 운전을 하던 북한공관 통신서기관 한상렬(36)씨가 정부군이 쏜 총알이 운전석 좌측 옆구리 자체를 뚫고 굴절하여 그의 심장에 박혀버리게 됩니다.  

 

그는 총 맞은 가슴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1분 동안 초인적인 의지와 사명감으로 운전을 하여 3m를 더 가고 안전지대인 대사관 후문에서 차량이 옆으로 돌아서 도착하였고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차 안 운전석 뒤로 젖혀져있고 코피를 흘리고 있던 서기관. 한국 공관원들이 응급 처지를 하였으나 피격 20여 분 만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오후 10시 양측 공관원들이 사망한 한 씨를 대사관저 구내에 그의 머리를 한반도로 향하도록 눕히고 매장을 하게 됩니다.  

 

 

8. 실제 남북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은?

 

공항과 관저에서 함께 시간을 보낼 때  이 기간에는 체제와 이념 문제와 같은 서로의 감정과 자존심을 건드는 말과 행동을 삼가하기로 합니다. 한국 측에선 고추장을, 북한 측에선 총각김치를 가지고 와서 서로 나눠먹으며 이웃으로 지내게 됩니다. 

 

한국 대사가 "북한에도 강씨가 많이 사느냐, 남남북녀라는 말을 들어봤느냐, 북쪽에서도 문중을 따지느냐" 는 등 화제를 던지며 가볍게 담소를 나눴습니다. 

 

북한 대사는 "고향이 남포인데 오래전에 그곳에 이십여 리나 되는 둑과 갑문을 세워 담수를 모아 평안도 황해도 일대 농사를 짓습니다."는 등의 얘기를 하며 한층 가까워집니다. 

 

9. 결말은 어떻게 되나요? 실제로 케냐에 도착했을때 서로 모른척 했나요?

 

모른 척한 것은 영화의 픽션입니다. 양측 공관원과 가족들은 몸바사 공항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그동안 너무나 감사했다며 통일이 되면 다정한 이웃이 되어 함께 살자는 기약 없는 작별인사를 주고받으며 뉴스와 각종 언론매체에도 나오게 됩니다. 이후 강신성 대사는 자전적 소설 <소말리아 탈출기> 소설을 쓰시고 모가디슈 영화는 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합니다.